최근 몇 달간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들의 수익률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일부 레버리지 ETF는 3개월 만에 148%에 달하는 경이적인 성과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 24%에 그친 코스피 지수 상승률을 압도했습니다. 이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즉 K-반도체의 ‘투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과거의 ‘반도체 사이클’이 돌아왔다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의 반도체 랠리는 일시적 경기 회복이 아닌,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산업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AI 서버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수익률 뒤에 숨겨진 구조적 변화의 비밀과, 투자자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레버리지 ETF의 변동성 리스크를 친근하지만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AI가 촉발한 이례적인 반도체 슈퍼 사이클
과거 반도체 산업은 평균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되는 현재의 랠리는 그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이는 단순한 재고 소진이나 가격 반등을 넘어섭니다.
HBM: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 게임 체인저
AI 학습 및 추론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해야 합니다. 기존 DRAM으로는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HBM입니다. HBM은 여러 개의 DRAM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량을 혁신적으로 증가시킨 제품입니다.
AI 모델의 진화 속도와 HBM의 관계 AI 모델의 크기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이를 구동하기 위한 GPU의 성능 요구치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현재 주요 조사기관들은 HBM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수백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고, DRAM 시장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모리 산업의 중심 축이 범용 DRAM에서 HBM이라는 고성능·고수익 제품으로 영구히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수요 변화야말로 투자를 이끌어 수익률(EPS)과 기업가치(PER)가 동반 상승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만든 핵심 동력입니다.
투톱 집중 전략이 빛을 본 이유
국내 반도체 ETF가 우수한 성과를 거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라는 HBM 시장의 투톱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7.6%에 달하는 폭발적인 주가 상승률을 보이며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홀로 이끌었습니다.
성패를 가른 HBM 리더십 주요 반도체 ETF들은 이 두 기업의 주가 움직임을 반영하여 코스피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익을 냈습니다. 이는 AI 시대의 수혜가 특정 기술 리더십을 가진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HBM 핵심 기술력과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에 집중 투자하는 ETF들이 수익률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 이 흐름을 타지 못한 기존 가치투자 펀드들은 투톱 종목의 부재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시장의 판도가 그만큼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변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K-반도체 생태계의 재조명 여기에 더해 HBM 제조에 필수적인 장비를 공급하는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까지 동반 성장하면서 K-반도체 ETF의 수익률을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HBM 기술은 단순 메모리 제조를 넘어, 칩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첨단 후공정(패키징) 기술이 핵심 경쟁력입니다. 이 분야의 강소기업들이 AI 시대의 새로운 수혜주로 떠오르며 ETF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고수익 ETF의 양날의 검: 변동성 리스크 관리
경이로운 수익률을 자랑하는 반도체 ETF 중에는 레버리지 상품들이 최상위를 차지했습니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 지수의 일간 수익률을 2배 수준으로 추종하도록 설계됩니다. 이는 지수가 1% 오르면 2% 수익을 안겨주지만, 지수가 1% 하락하면 2%의 손실을 입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급락에 대비해야 하는 레버리지의 특성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했을 때, 이들 레버리지 ETF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AI 산업의 성장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해도, 주가는 때때로 기대감을 과하게 선반영하여 건전한 조정 국면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투자자는 레버리지 ETF가 장기적인 상승 추세 속에서도 일일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특히 레버리지 ETF는 장기간 보유할 경우 발생하는 복리 효과의 왜곡으로 인해 지수 자체의 장기 수익률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 모멘텀에 베팅할 때는 강력하지만, 변동성이 커지는 장세에서는 투자 원금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AI 시대,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을 찾아서
AI 수요는 HBM에 이어 범용 DRAM까지 확산시키며 메모리 반도체 산업 전반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각에서는 내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2018년 이후 최대 실적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이러한 구조적 슈퍼 사이클에 투자할 때는 단순히 당장의 수익률 순위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술 핵심 기업 선별: HBM뿐만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 후공정 장비(소부장) 기업, 그리고 차세대 HBM(HBM4 등)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기업들을 선별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특히 HBM의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핵심 장비를 가진 기업들의 희소 가치도 함께 올라갑니다.
리스크 관리 및 분할 매수: 레버리지와 같은 고위험 상품보다는, AI 반도체 핵심 기업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압축한 일반 ETF를 활용하거나, 조정 국면을 활용하여 매수하는 방식으로 변동성을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의 열쇠입니다. 장기적인 구조적 성장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꾸준히 사 모으는 전략이 변동성을 이겨낼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반도체 랠리는 AI라는 강력한 성장 동력을 얻어 과거의 사이클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투자의 기회는 분명하지만, 높은 수익률에 가려진 레버리지 리스크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의 자세일 것입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