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요. 하지만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3년 소득이동통계’는 이런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1년 새 소득 분위가 상승한 국민은 5명 중 1명도 되지 못했고, 소득 최상위 20%인 ‘5분위’로의 진입에 성공한 사람은 겨우 3.5%에 불과했습니다. 이 수치들은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냉정한 신호입니다.
소득 이동성 하락: 닫혀가는 기회의 문
국가데이터처의 이번 통계는 2022년과 2023년 모두 소득이 있었던 ‘노동시장 잔류자’ 2,830만 명을 대상으로 근로 및 사업 소득을 추적한 결과입니다. 이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흐름은 바로 소득 이동성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득 이동성이란 소득 분위가 바뀔 정도로 소득이 오르거나 떨어진 사람의 비율을 의미합니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넘어오면서 소득 분위가 변한 사람은 34.1%였는데, 이는 전년 대비 0.8%포인트 줄어든 수치입니다. 더 높은 소득 분위로 이동한 비율(17.3%)이 하락한 비율(16.8%)보다 소폭 높긴 했지만, 중요한 건 이동성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득 이동성은 2019년 이후 꾸준히 하락 추세에 있으며, 이는 곧 사회 내에서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해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됩니다.
최상위 5분위 진입의 벽과 1분위의 굴레
소득 이동성의 경직성은 특히 소득 양극단의 분위에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부의 최상위 계층과 빈곤층의 지위는 한 번 정해지면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소득 최상위 20%, 5분위의 철옹성
2022년 소득 1분위부터 4분위에 속했던 사람들 중 2023년에 5분위 진입에 성공한 비율은 불과 3.5%였습니다. 이는 곧 ‘인생 역전’과 같은 극적인 소득 상승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이미 5분위에 속했던 사람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는 비율이 85.9%에 달합니다. 6년(2017년~2023년) 연속 5분위 지위를 유지한 비율도 59.3%로, 한 번 상위 계층에 진입하면 안정적으로 그 부를 유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마치 소득의 상층부가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 진입이 극도로 어려운 ‘철옹성’과 같은 모습입니다. 부가 부를 부르는 구조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빈곤층 1분위, 가난의 굴레 심화
가난한 계층인 소득 1분위의 현실 역시 암울합니다. 2022년 1분위였던 사람이 2023년에도 계속 1분위에 머무른 비율, 즉 ‘유지율’은 69.1%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늘어났습니다. 이 숫자는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6년 연속 1분위를 유지한 비율도 27.8%로, 한번 빈곤층으로 분류되면 장기간 그 상태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1분위 유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가난의 대물림’ 또는 ‘빈곤의 덫’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회경제적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계층 이동은 중위층 2~4분위에서만 활발
소득 분위별 이동 비율을 살펴보면, 가장 활발한 이동이 일어나는 구간은 2분위(48.6%), 3분위(44.0%), 4분위(34.0%) 순입니다. 즉, 가장 가난한 1분위와 가장 부유한 5분위를 제외한 중위 소득층에서 소득의 등락이 상대적으로 더 자주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회의 역동성이 주로 중위 계층 내에서만 작동하고 있으며, 양극단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결론적으로, 소득 1분위와 5분위가 강력하게 고착되는 현상은 중간 계층에서의 소득 변동성만으로 전체 소득 이동성이 낮아지는 흐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층 이동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근거가 됩니다.
성별 및 연령별 소득 이동성 차이: 청년과 여성의 역동성
소득 이동성 지표를 성별 및 연령별로 세분화했을 때는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동성이 높다
성별로는 여성의 소득 이동성(35.2%)이 남성(33.3%)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여성은 상향 이동과 하향 이동 모두 남성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는데,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와 경력 단절 후 재진입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됩니다. 여성의 노동 환경 변화가 남성보다 더 역동적인 소득 변화를 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층의 높은 이동성, 하지만 그 안의 복잡한 현실
연령대별로는 청년층(15~39세)의 소득 이동성이 40.4%로 가장 높았으며, 중장년층(40~64세) 31.5%, 노년층(65세 이상) 25.0% 순이었습니다. 청년층의 높은 이동성은 잦은 이직, 첫 직장 진입, 경력 개발 등 활발한 사회 초년기 활동에 기인합니다.
특히, 청년층 중 매년 소득이 있던 ‘지속 취업자’보다 중간에 연간 소득이 없었던 ‘간헐적 취업자’의 소득 이동성(68.3%)이 훨씬 높았습니다. 언뜻 보면 간헐적 취업자가 더 역동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릅니다. 지속 취업자가 모든 분위에서 상향 이동 비율이 더 높았고, 1분위 탈출률(75.8%)과 5분위 유지율(79.5%) 역시 간헐적 취업자보다 높았습니다. 즉, 소득 이동성의 ‘변동 폭’은 간헐적 취업자가 클지 몰라도, 안정적으로 ‘성공적인’ 소득 상승 궤도에 오르는 것은 ‘지속적’으로 경제 활동을 이어온 청년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소득의 지속성이 계층 상승의 중요한 동력이 되는 셈입니다.
고착화된 사회, 해법은 무엇인가?
이번 소득이동통계는 우리 사회가 소득 양극단에서 ‘고착화’되고 있으며, 계층 상승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명확한 진단입니다. 특히 1분위의 높은 유지율은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 해소와 실질적인 자활 지원책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5분위의 높은 유지율은 부의 편중을 완화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소득 이동성의 하락은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양극화 해소와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소득의 고착화를 깨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성적 통찰과 행동 가이드가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