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하나가 채권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스멀스멀 오르던 국고채 금리가 급기야 연고점을 뚫고 발작하듯 치솟았고, 그 중심에는 ‘방향 전환(change of direction)’ 가능성을 언급한 이 총재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이미 금리 인하 사이클이 멈췄다고 보던 시티 같은 외국계 하우스의 판단에 한은 총재가 직접 쐐기를 박아준 셈이죠.
쉽게 말하면요, 채권 시장은 그동안 ‘혹시라도 금리가 더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총재의 발언은 그 일말의 기대마저 완전히 거둬들이는 충격을 줬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인하 사이클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표현은 시장에 ‘인상’이라는 무거운 가능성을 던졌고, 이는 곧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채권 이탈로 이어졌습니다. 채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10년물 국채 금리는 3.282%를, 3년물은 2.923%를 기록하며 모두 연고점을 경신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채권 시장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단순히 총재 한 마디 때문인지 아니면 더 깊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창용 총재의 ‘방향 전환’ 발언, 시장의 과민 반응인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던진 ‘방향 전환(even the change of direction)’이라는 표현은 사실 언론의 헤드라인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한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인하 사이클’이지만, 이 발언은 ‘데이터 의존적인 통화정책’이라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장은 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이 상황이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죠. 기존에 시장에 남아있던 소수의 인하론자들이 ‘인하의 가능성이 0%가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티를 비롯한 주요 외국계 투자자들은 이미 한국의 금리 인하가 2.5% 수준에서 끝났다고 판단해왔는데, 총재의 발언이 그 판단에 확신을 더한 셈입니다. 금리가 더 이상 내려갈 희망이 없어지니,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외국인들이 국채 선물을 2조 6천억 원 넘게 순매도하며 시장을 떠났습니다.
외국인들의 대규모 매도는 단순히 ‘수익’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화 환전이라는 추가적인 악순환을 만듭니다. 채권을 팔아 확보한 원화 대금을 달러로 환전하려 하면서 달러 수요가 늘어나고, 이는 곧 환율 상승으로 이어져 국내 금융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채권 시장과 외환 시장이 동시에 요동치는 ‘불안정의 쌍곡선’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한은과 기획재정부가 서둘러 이 총재 발언이 ‘통화정책 선회나 금리 인상을 검토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정부가 금리 급등을 과도한 현상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인을 시장에 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미 시장에 퍼진 심리적 충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국 채권 시장의 이중고: 공급 압박과 이탈 심리
국채 금리가 연고점을 뚫은 배경에는 이 총재의 발언뿐만 아니라, 국내 채권 시장의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요, 채권 시장의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압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년도 정부 본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700조 원을 돌파한 728조 원입니다. 이에 따라 국고채 발행 규모 역시 역대 최대인 232조 원으로 잡혔습니다. 차환 발행을 제외한 순수한 적자 국채 발행 규모만 해도 110조 원에 이릅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기 위해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빌려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채권 시장에 엄청난 물량의 ‘채권 공급’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입니다.
채권 공급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채권의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채권 가격은 하락(금리 상승)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매년 200억 달러 규모로 나갈 대미 투자금, 그리고 150조 원으로 증액된 국민성장펀드의 재원 마련 등 준예산성 정책 발행 물량까지 가세하면서 채권 공급 부담은 더욱 가중됩니다. 마치 댐에 물이 가득 찼는데, 상류에서 계속 물을 쏟아붓는 형국인 거죠.
채권 공급 압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까지 겹치면서 한국 채권 시장은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습니다. 국고채 발행 순증 규모가 당분간 유지되면서 공급 부담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심리’와 결합하면서 금리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금리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국고채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곧 국가 전체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고채 금리는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기업의 회사채 금리 등 모든 금융 상품의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요,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르게 되어 가계의 이자 부담이 가중됩니다. 기업들 역시 자금을 조달할 때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하므로 투자나 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고금리에 취약한 기업이나 가계의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은이 금리 인하 사이클의 종언을 고한 지금, 시장 참여자들은 이제 ‘금리 인하’라는 안전망이 사라졌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방향 전환’ 발언은 단순히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것을 넘어, 이미 누적되어 있던 한국 채권 시장의 구조적 취약점(최대 규모 국채 발행)을 한 번에 터트린 기폭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이러한 불안 심리를 극대화시켰고요.
우리는 지금 ‘금리 인상 가능성’이라는 짙은 안개 속에서 채권 시장의 구조적 압박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앞으로 금융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순히 뉴스 헤드라인만 볼 것이 아니라, 국채 발행 규모와 외국인 수급 동향 같은 팩트를 중심으로 시장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적 감탄으로 끝내기보다는, 이성적 통찰과 행동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니까요.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