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노후 자산 적립을 위해 연금저축 계좌를 만지작거려 봤을 겁니다. 세액공제 혜택이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인 연금저축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틀’ 때문에 오히려 직장인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습니다. 열심히 연금을 붓는 ‘유리 지갑’ 직장인들만 손해 보는 듯한 불합리한 구조. 지금부터 이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 세 가지를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5500만원 고소득 기준, 시대착오적인 세액공제 역차별
혹시 연금저축 세액공제율이 왜 총급여액 5500만원을 기준으로 16.5%와 13.2%로 나뉘는지 궁금해 보신 적 있나요?
쉽게 말하면요, 5500만원을 넘지 않으면 16.5%를, 넘으면 13.2%를 공제받는 구조입니다. 이 기준을 채워 900만원 한도를 모두 납입하면 돌려받는 세금만 3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죠.
문제는 이 ‘5500만원’이라는 숫자가 현시대의 소득 수준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연금 전문가들도 인정하듯이, 이 금액은 무려 2013년에 ‘중산층 상한선’이라고 정부가 규정한 낡은 기준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웬만한 대기업 대졸 초임이 5000만원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5500만원을 넘는다고 ‘고소득층’이라 낮은 공제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죠.
더 심각한 것은 바로 경계선에서 나타나는 ‘소득 역전 현상’입니다.
2만원 더 벌고 세금은 더 내는 이상한 구조
연봉 5499만원인 A씨와 5501만원인 B씨를 비교해 봅시다. B씨가 세전으로 2만원을 더 법니다. 하지만 연금 세액공제를 적용하면 A씨가 16.5%의 높은 공제율을 적용받아 연말정산에서 더 많은 돈을 돌려받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세후 실질 소득은 연봉이 더 적은 A씨가 B씨보다 높아지는 불합리가 발생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5500만원의 문턱을 넘었더니 세금 폭탄을 맞은 셈이죠. 과세 당국조차 이 기준의 명확한 근거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 제도의 불합리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도 해지 시점의 복병, 3.3%포인트의 세금 역차별
노후 자산 적립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연금 계좌지만,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중도 해지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때 직장인들은 또 한 번의 불합리한 ‘세금 역차별’에 직면하게 됩니다.
연금 계좌는 55세 이전에 해지하면 그동안 받은 세액공제 혜택을 모두 뱉어내야 합니다. 여기에 ‘기타소득세’ 16.5%가 일괄 부과되죠.
평소 연봉이 5500만원 이하라서 16.5%의 공제율을 적용받던 분들은 해지할 때도 16.5%를 내니 불이익이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5500만원 초과자들입니다. 이들은 평소 13.2%의 낮은 공제율을 적용받았는데, 해지 시점에는 더 높은 16.5% 세율이 부과됩니다. 즉, 3.3%포인트만큼의 세금을 부당하게 더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음… 그건 좀 애매하더라고요. 정부는 노후 자금으로 쓰라고 세금 혜택을 줬는데, 중간에 깨면 패널티를 줘야 한다는 논리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에 따라 차등 공제해놓고, 나중에 모두에게 동일한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은 명백히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이처럼 과도한 중도 해지 패널티는 직장인들이 연금저축을 꺼리게 만들고, 노후 자산 적립의 기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내 주식에 대한 연금의 냉대, ‘찐애국자’만 손해 보는 구조
최근 국내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연금 계좌에서 연금 국내 주식 투자를 권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세제 측면에서 명백히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요, 일반적인 국내 주식형 펀드는 매매 차익에 대해 비과세가 적용됩니다. 하지만 이 펀드를 연금저축 계좌에 넣고 투자하면 나중에 연금을 수령할 때 운용 수익 전체에 대해 3.3%에서 5.5%의 연금소득세가 부과됩니다. 일반 계좌에 그대로 뒀다면 애초에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게 되는 셈이죠.
예를 들어 500만원의 매매 차익을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반 계좌(국내 주식): 세금 0원
연금 계좌(국내 주식): 수령 시점 16만 5천 원 ~ 27만 5천 원 세금 발생
이 상황이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죠. 연금 계좌를 활용할수록 세금에서 손해를 보는 구조이니, 당연히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형 펀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일반 계좌에서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연금 계좌에서는 3.3%~5.5%만 내면 되니 세금 부담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큰 이점이 있거든요.
결국 연금 국내 주식 투자는 ‘연금에 국내 주식 담으면 (세금 내주는) 찐애국자’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만큼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되어버렸습니다.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내 주식형 펀드의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낡은 연금 제도, 현명하게 우회하는 실전 전략
현재의 연금저축 제도가 불합리하더라도 당장 노후 자산 적립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낡은 제도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해야 할까요?
세액공제 기준을 역이용해 투자하라
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5500만원 기준선을 꼭 피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총급여가 5500만원에 근접하다면, 16.5%의 높은 세액공제율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1차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소득이 기준을 넘더라도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13.2%의 공제율이라도 당장 세금 혜택을 받고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금 환급액 자체보다, 세금 이연(미루는 것)을 통한 장기적인 투자 기회 확보입니다.
연금 계좌 운용의 정답은 ‘해외’와 ‘ETF’
위에서 설명했듯이 연금 국내 주식 투자는 세금 구조상 불리합니다. 따라서 연금 계좌는 세제 혜택이 극대화되는 해외 투자 상품, 특히 해외 상장 지수 펀드(ETF)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합니다. 연금저축 세액공제를 받으면서 국내에서 비과세가 안 되는 해외 투자 수익에 대해 저율 과세(연금소득세)를 적용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IRP와 연금저축의 한도를 전략적으로 배분하라
개인형 퇴직연금(IRP)과 연금저축 계좌는 합산하여 세액공제 한도가 적용됩니다. IRP는 연금저축보다 공제 한도가 300만원 더 크지만(총 900만원), 중도 인출 시 연금저축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과 패널티가 따릅니다. 따라서 유동성이 필요할 수 있는 자금은 연금저축에, 55세까지 절대 건드리지 않을 확고한 노후 자금은 IRP에 배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정부 개선 촉구와 직장인을 위한 연금 운용 제안
현재 연금저축 제도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인들의 변화된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5500만원 고소득 기준이나 중도 해지 시 연금 중도 해지 세금 역차별, 그리고 연금 국내 주식 투자의 불리함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유리 지갑 직장인들의 든든한 노후를 위해 시대에 맞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연금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독자 여러분들도 낡은 제도의 틈을 잘 파악하고 전문가적 시각으로 대응하여 성공적인 노후 자산 적립을 이뤄내시길 바랍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