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청산에 대한 시장의 공포감이 다시 커지고 있어요.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 시사 때문이죠. 작년 7월, 이 청산 사태가 국내 외환, 채권, 주식 시장을 통째로 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이번에도 대규모 유동성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시장이 휘청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이미 엔화 가치 상승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거대한 엔 캐리 자금의 움직임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작년처럼 급격한 충격보다는 장기적인 유동성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무엇이며, 시장에 왜 충격을 주나?
엔 캐리 트레이드는 말 그대로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자산(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일본의 초저금리 정책 덕분에 엔화는 오랫동안 글로벌 투자 자금의 ‘조달 통화’ 역할을 해왔죠. 이 막대한 자금이 한순간에 빠져나와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바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입니다.
작년 악몽의 배경: 시장의 무방비 상태
작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극심한 충격을 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시장의 예상 밖 움직임 때문이었죠.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를 보면, 작년 7월 2일 기준으로 엔화 선물환 투기적 순포지션은 무려 순매도 2조 3000억 엔에 달했습니다. 이는 헤지 목적이 아닌 순수 투자 목적으로 글로벌 자금이 엔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일본은행이 작년 8월 1일 갑작스럽게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추가 인상까지 시사하자 시장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160엔대였던 달러/엔 환율이 140엔대로 수직 낙하했고, 순매도 포지션이 청산되면서 엔화를 빌려 투자했던 자산에서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했습니다. 그 결과는 국내 주식시장의 역사적인 폭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작년 8월 5일, 코스피 지수는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이번엔 다르다: 엔화 선물 시장의 ‘순매수’ 전환
전문가들이 이번 상황을 다르게 보는 핵심 근거는 엔화 선물환 순포지션의 변화입니다.
2일 기준, 엔화 선물환 투기적(비상업용) 순포지션은 약 8800억 엔 규모의 순매수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순매수라는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미 엔화의 강세에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예요.
이러한 선물 시장의 포지션 변화는 시장이 일본은행의 긴축 시그널을 이미 인지하고 상당 부분 선반영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NH투자증권의 전병하 애널리스트는 “미·일 금리 차 축소 기조가 엔화 강세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시장의 대비와 경상 수급 변화를 고려하면 엔 캐리 청산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과거와 달리 엔 캐리 청산의 대상으로 보기 어려운 직접투자(FDI) 비중이 늘어나면서 가파른 자금 이탈 가능성도 낮아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사라지지 않는 ‘은은한’ 유동성 축소 리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유동성 충격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급격한 충격은 피할 수 있더라도, 엔 캐리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추세는 장기적으로 시장 전반에 은은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거대한 규모와 잠재적 청산 규모
엔 캐리 트레이드의 정확한 규모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한국은행은 지난해 전체 엔 캐리 자금의 총잔액을 506조 6000억 엔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이 중 약 **6.5%(32조 7000억 엔)**를 청산 가능 규모로 분석했습니다.
현재 엔화 선물 순매도 포지션은 순매수로 전환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잠재적 청산 자금은 다음과 같습니다.
글로벌 은행의 엔화 대출: 41조 1000억 엔 중 약 13조 엔
일본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465조 엔 중 약 19조 2000억 엔
특히, ‘와타나베 부인’으로 대표되는 일본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증권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들의 투자금 축소는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년 초 금리 인상 가능성 및 이중 리스크
iM증권의 박상현 연구원은 당장 12월보다는 내년 초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확률이 매우 높다고 전망합니다. 이는 유동성 측면에서 국내외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자금경색 현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국채 금리 상승과 엔화 가치 상승이 맞물린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다시 고조되어 유동성 축소 리스크가 증폭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작년과 같은 순간적인 초대형 충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수조 원대의 유동성 축소 압력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현 시장의 주된 분석입니다. 투자자들은 엔화의 움직임과 일본은행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