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은행의 규제를 벗어나 비은행 금융기관(자산운용사, 사모펀드)이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사모 대출(Private Credit)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이미 2조 달러(약 2,946조 원)를 넘어서며 금융 시스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죠. 하지만 이 시장에서 최근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핵심은 중복 대출과 느슨한 심사 기준으로 인한 부실의 은폐입니다. 저신용 기업에 무리하게 집행된 대출들이 연이어 파산 사례를 낳으면서,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소름 돋을 정도로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모 대출 시장의 성장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대출’이 어떻게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2008년 데자뷔: 부실을 숨기는 사모 대출의 구조적 취약점
부실의 징후: 바퀴벌레의 경고와 중복 담보 사기
최근 미국 시장에서 발생한 두 건의 기업 파산은 사모 대출 시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바로 비우량 자동차 대출 회사인 트라이컬러 홀딩스와 자동차 부품 업체 퍼스트브랜즈의 연이은 몰락입니다. 트라이컬러 홀딩스는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같은 채권을 담보로 여러 금융사에서 중복 대출을 받는 수법을 수년간 숨겨왔습니다. 퍼스트브랜즈 역시 미수금을 중복 담보로 맡기고 사모 대출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죠.
이런 상황을 두고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이면 어딘가에 더 있다는 뜻”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던졌습니다. 눈에 띄는 파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으며, 시장 전반에 걸쳐 유사한 구조적 취약성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사모 대출을 받는 기업들은 대개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이 어려운 중소, 중견 기업들이 많습니다. 채무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뜻이죠.
규제를 비웃는 ‘신용 쇼핑’: 느슨한 심사의 덫
사모 대출의 위험성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느슨한 심사 절차에 있습니다. 은행과 달리 사모 대출 운용사는 엄격한 공시 자료나 내부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습니다. 운용사가 자체적으로 기업 자료를 검토하거나, 소규모 신용평가사에 평가를 맡기는 방식으로 대출이 이루어지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평가를 해주는 신용평가사를 찾아다니는 ‘신용 쇼핑’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곧 부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대출 심사 기준을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에도 신용평가사들이 부실한 주택담보대출 채권(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높은 등급을 부여하여 위기를 키운 전례가 있습니다. 사모 대출 시장에서 나타나는 이런 관행은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고 걸러낼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시절의 구조적 불안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자 지급 유예의 함정: 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PIK
사모 대출의 특징 중 하나는 PIK(Payment-in-Kind) 옵션입니다. PIK는 채무자가 당장 현금으로 이자를 갚는 대신, 이자 금액을 원금에 합산해 나중에 일괄적으로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현금 흐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매력적이지만, 금융 시장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이자 지급이 유예되는 동안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원금과 이자를 한 번에 갚아야 할 시점에 기업이 파산할 확률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사모 대출 중 PIK 옵션을 선택하는 비율은 2022년 6~7% 수준에서 최근 11%까지 급등했습니다. 이는 시장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으며, 부실 기업들이 일시적인 자금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PIK에 의존하고 있다는 강력한 징후입니다. 빚을 더 많이 갚게 만드는 이 방식은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의 부실 위험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위험한 연결 고리: 은행과 사모 대출의 숨겨진 관계
많은 분이 사모 대출은 은행 밖에서 이루어지니 은행 시스템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모 대출의 위험은 은행 시스템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숨겨진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은행의 간접적인 참여입니다.
시중은행들은 사모 대출을 직접 집행하지 않지만, 이 대출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대출을 내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이 비은행 금융기관에 내준 대출 잔액이 1조 7057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은행이 규제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모 대출 시장의 위험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사모 대출 부실이 대규모로 터진다면, 이 돈을 빌려준 은행들 역시 연쇄적인 손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가 “최근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과 유사한 조짐을 보인다”고 경고한 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닙니다. 규제가 느슨한 그림자 금융이 팽창하고, 그 위험이 복잡한 연결 고리를 통해 주류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죠.
알아야 할 금융 시장의 그림자
사모 대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의 진화’로 포장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느슨한 감시와 위험한 대출 관행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중복 담보 대출, 신용 쇼핑, 그리고 부채를 키우는 PIK 옵션의 증가는 이 시장이 이미 구조적인 부실을 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항상 가장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모 대출은 바로 그 약한 고리입니다. 이 부실의 여파가 은행이라는 거대한 배로 옮겨붙기 시작하면, 그 충격은 피할 수 없습니다. 금융 소비자인 우리는 이 ‘그림자 대출’ 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자신의 자산이 예측할 수 없는 금융 시장의 변동성에 안전하게 대비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리스크가 커지는 시기일수록, 안전한 자산 관리와 금융 상식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집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