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을 보면, 아마 많은 분이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원래 안전하다는 것과 위험하다는 건 반대로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 말이죠.
맞습니다. 금은 시장에 불안이 감돌 때, 주식이나 가상화폐는 낙관적인 경기 회복 기대가 있을 때 오르는 것이 금융의 오랜 공식이었습니다. ‘금은 불안할수록, 주식은 낙관적일수록 오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투자자들이 위험을 피하려 할 때 금으로, 위험을 선호할 때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위험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 공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국제 금값은 트로이온스당 3900달러를 돌파하며 4000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비트코인마저 12만 5000달러선을 넘어서며 역대급 기록을 세웠습니다.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이 마치 한 몸처럼 함께 오르는 이 현상, 우리는 이것을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라고 부릅니다. 이례적인 동반 상승의 배경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요? 그리고 이 랠리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대공황을 넘어선 유동성: 랠리의 근본적인 힘
지금의 에브리씽 랠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유동성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돈이 너무나도 많이 풀려 있다는 뜻이죠.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만 봐도, 전 세계 국경 간 은행 신용 규모가 금융 위기 이전 최고치를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은행들이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대출금이 역사상 가장 많은 수준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찍어냈습니다. 이 돈이 경제 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금융 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했어요. 투자처를 찾아 헤매던 이 막대한 자금은, 전통적인 투자 공식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겁니다. “넘치는 물은 댐을 가리지 않는다”고 할까요? 돈이 너무 많아지니 안전 자산이든 위험 자산이든 모두 사상 최고가 랠리에 동참하게 된 배경입니다.
골드 러시의 이면: 불안과 투기의 공존
금값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는 데에는 흥미로운 두 가지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는 투기적 수요, 둘째는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입니다.
금은 불안할 때 오르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지금의 불안은 ‘경제가 나빠질 것 같다’는 전통적인 불안감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약달러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금값 상승의 주요 동력이 되고 있어요.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거래되는 금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기에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된 FOMO (Fear of Missing Out,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 현상도 금값을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급등한 금값 랠리를 놓친 헤지펀드들이 금 ETF 등을 통해 뒤늦게 뛰어들면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겁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연준(Fed)의 신뢰성 훼손 리스크입니다. 일부 투자은행들은 연준의 독립성이 흔들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안전 자산의 대명사였던 미국 국채에서 돈이 빠져나와 금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연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 자체가 금을 4000달러를 넘어 5000달러까지 치솟게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불안 요인인 것이죠. 금이 ‘인플레이션 헷지(Hedge)’를 넘어, 통화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험 자산 강세의 동력: ‘3저 시대’의 개막
주식과 비트코인 등 위험 자산의 강세는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현재 글로벌 금융 시장을 관통하는 세 가지 저(低) 현상, 이른바 ‘3저 현상’이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금리 (미국 추가 금리 인하 기대): 미국 연준의 완화적 통화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자 수익률을 낮춥니다. 낮은 금리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 주식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위험 자산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주요 요인입니다.
저달러 (약달러): 미국 금리 인하 기대는 자연스럽게 달러 가치를 약세로 만듭니다. 약달러는 특히 신흥국 증시에 막대한 외국인 자금 유입을 유도하며 글로벌 증시의 동반 랠리를 촉진합니다. 실제로 미국 소형주와 신흥국 주식이 함께 뛰는 현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유가 (배럴당 60달러대 국제유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유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기업의 생산 비용을 절감시켜 실물 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3저 현상은 위험 자산으로 자금이 재차 유입될 수 있는 강력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위험 선호 심리가 금융 시장 전반에 퍼지면서, 주식뿐만 아니라 변동성이 높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까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현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에브리씽 랠리, 지속 가능성과 투자자가 할 일
결론적으로 지금의 에브리씽 랠리는 ‘막대한 유동성’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안전과 위험이라는 모든 배를 동시에 띄워 올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전통적인 경제 공식이 깨지는 이례적인 상황인 만큼, 투자자들은 이 랠리의 지속 가능성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연준의 완화적 기조가 유지되는 한 자금은 계속 흐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유동성 뒤에는 물가 리스크, 각국 정부의 재정 리스크, 그리고 관세 불확실성 등 잠재적 위험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지금의 랠리에 편승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묻지마 투자”보다는 이성적인 통찰이 필요합니다. 금은 단순히 안전 자산을 넘어 ‘통화 정책 리스크 헷지’ 수단으로 접근하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위험 자산은 3저 현상과 유동성 환경이 바뀔 때 급격한 변동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랠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동성 환경이 바뀌는 순간, 안전과 위험 자산 중 어느 쪽이 먼저 충격을 흡수할지 고민하고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넘치는 돈의 흐름을 잘 읽되, 언제든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현명한 투자자의 자세입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