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오랜 지배자였던 미국 달러의 위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20년 만에 최저치인 58%까지 하락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 변화를 넘어,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국제금융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우리는 이제 달러의 시대가 영원하지 않다는 냉철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과거 금융위기나 팬데믹 상황에서 안전자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달러가, 최근에는 미국의 정치·재정적 불안정성과 맞물려 그 신뢰 기반이 약화되는 이른바 ‘달러 디스커넥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국제금융질서는 단일 패권을 넘어 복수의 통화가 기축통화 기능을 분담하는 ‘기능적 다극화(functional multipolarity)’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어디서 오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달러 패권 축소의 세 가지 핵심 동인 분석
1.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과 ‘달러 디스커넥트’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처럼, 최근 달러의 약세는 미국 정책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바가 큽니다. 과거 위기 상황에서 달러는 시장의 불안을 흡수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고율 관세 발표 직후 변동성 지수(VIX)가 급등하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달러/유로 환율이 하락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미국의 정치적 갈등과 재정 적자 문제가 겹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더 이상 달러를 완벽한 안전자산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쉽게 말해, 기축통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셈입니다.
2. 지정학적 무기화에 대한 반작용
달러 패권의 약화는 지정학적 요인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달러 결제 시스템을 활용하자, 이들 국가는 물론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탈달러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자산 동결 조치 등 달러의 ‘무기화’는 오히려 해당 국가들에게 자국 통화 결제와 대안 결제망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의 위안화 기반 국제결제망(CIPS)은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며 탈달러화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3.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도전
미래의 금융 인프라 역시 달러의 중개자 역할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 같은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확산은 국경 간 거래에서 굳이 달러를 경유하지 않아도 되는 직거래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이 주도하는 다중 CBDC(mCBDC) 프로젝트는 복수 통화 간 호환 가능한 결제 플랫폼을 제공하며, 장기적으로 달러의 중개 기능 약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 발전은 금융 거래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달러 중심의 결제 시스템을 우회하는 경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민간 영역의 자금 이탈과 한국의 대응 전략
달러 이탈 움직임은 공적 부문(외환보유액)을 넘어 민간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장기증권을 순매도하고 있으며, 글로벌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금, 비달러 채권, 그리고 신흥국 통화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달러 자산의 장기적 안정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한국과 같은 개방 경제는 이 같은 글로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제언처럼, 우리는 금융 주권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대응 방안 세 가지
외환보유액 다변화와 통화 스와프 확대: 외환보유액의 통화 구성을 다변화하여 특정 통화 쏠림 현상을 줄이고, 주요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을 확대해 위기 시 유동성 확보 채널을 강화해야 합니다.
CBDC 프로젝트 적극 참여: BIS 주도 다중 CBDC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디지털 국제 결제망에서 우리의 역할을 확보하고, 원화의 국제적 활용 가능성을 모색해야 합니다.
원화 국제화 전략: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국제화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는 결국 한국 경제의 체질 강화와 금융시장 심화를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달러가 단숨에 그 지위를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국제 금융 질서의 다극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이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한국 경제의 금융 주권을 굳건히 다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본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닌 참고용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최종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입니다.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